앞으로는 지방에서도 서울의 예술의전당.삼성미술관 리움이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같은 수도권의 쟁쟁한 미술관에 더 이상 기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역 미술관이 척박한 문화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화된 시설에다 다양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국내외 관람객을 유혹하고 있으며 예술가와 지역주민들에게 오감 만족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지역발전의 시너지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경남 김해시에서는 올해 초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이 개관했다. 클레이아크는 흙(Clay)과 건축(Architecture)의 합성어. 200억원 상당의 사업비가 투입된 클레이아크 미술관의 특징은 도자기로 건물 외벽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점이다. 도예가 신상호씨가 한 장 한 장 그려 구운 수공 타일 5000장이 건물 앞뒤를 덮어 흙을 소재로 생명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이곳은 개관 기념으로 '세계건축도자전'을 기획했다.

2004년 10월에 건립된 전북도립미술관에는 전국 각지에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국제적인 전시회를 잇따라 열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독일 현대미술의 단면'과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을 주한 독일문화원과 독일국제교류처 지원으로 개최했다. 독일을 대표하는 현대작가 바젤리츠의 판화 82점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대전시립미술관의 열정도 뜨겁다. '루오-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 특별전은 회화.판화 등 그의 대표작 240여 점과 함께 그가 생전에 쓰던 붓.팔레트.책 등 희귀 유품들도 공개했다. 루오의 초년부터 말년에 이르는 다양한 대표작들을 모은 대규모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주시 한국공예관의 눈부신 발전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귀감이 되고 있다. 한.유럽 도자특별전, 한.아세안 공예특별전, 조선찻사발 특별전 등 무게 있는 전시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 게다가 도자.한지.규방.염색 등 공예아카데미를 실시해 매년 200여 명의 시민들이 수강하는 등 생활공예 저변 확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에선 한국공예관의 예술경영을 학습하고 벤치마킹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미술관은 지역의 살아 있는 문화공간이다. 작품 감상 수준에서 벗어나 참여와 연대, 주민들의 문화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기능까지 수행하는 등 패러다임의 대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국제적인 작품.행사를 유치하는가 하면 스타 마케팅까지 동원하는 등 기업 뺨치는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작가와의 대화를 개최하거나 문화예술아카데미와 '찾아가는 미술관'을 운영하는 등 지역 주민들이 만족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잘 키운 지역 미술관은 지역의 대표 문화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고, 지역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도 한다. 파리의 퐁피두센터, 도쿄의 모리미술관, 베를린의 유대인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제 미술관.박물관을 자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자. 지방화 시대에 해야 할 수많은 사업이 있지만 미술관.박물관을 특성화하고 문화 도시로 가꾸는 정책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미술관이 많은 도시는 분명 행복한 도시, 높은 경쟁력을 자랑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변광섭 청주 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