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일반 40년 예술동지 백남준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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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on (58.♡.1.39) 작성일 06-02-17 14:33 조회 8,102회 댓글 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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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인 황 교수가 나선 것은 생전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황 교수는 백씨의 경기고 4년 후배이기도 하지만, 1968년부터 백씨의 전위적 작품에 맞춰 행위 예술을 함께 펼친 더없는 예술동지였다.
그 인연은 1960년대 백남준씨의 ‘예술 스캔들’로부터 비롯한다. 당시 백씨는 미국 뉴욕에서 전위 음악가이자 첼리스트인 샬롯 무어만을 만나 음악과 섹스를 연결시키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여 찬사와 논란을 함께 받았다. 1967년 공연된 오페라 ‘섹스 트로니크’에선 무어만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채 첼로를 연주하던 도중,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외설과 예술에 대한 논란을 촉발시킨 이 퍼포먼스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연일 대서특필됐고 많은 예술가들로부터 지지와 후원을 받았다.
황 교수는 “당시 백남준씨에 대한 재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초유의 ‘모금 콘서트’가 열렸는데 이 콘서트에서 연주하면서 백씨와 처음 인사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후 백남준씨와 황병기씨는 누구보다 가까운 동지로 교류하며 40년을 보낸다. 백남준씨는 2000년 본지 인터뷰에서 “내 80세 기념 퍼포먼스 때 황병기도 부르고, 서양의 댄스도 섞어서 한판 멋진 쇼를 꾸몄으면 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백남준씨가 어느 연주회를 끝낸 뒤 ‘오늘 내 음악회는 엉망이었다. 난 아무래도 한동안 알프스에 들어가 삼국지를 좀 읽어야 할 것 같다’며 격의없이 토로한 상대도 황병기씨였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경기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백남준 추모의 밤’ 행사에서 황병기씨는 떠나간 백남준을 생각하며 자신의 작품 ‘침향무’를 연주했다. 그는 “상식과 비(非)상식을 뛰어넘는 ‘20세기 최고의 괴짜’가 마지막 꿈을 이루기 전에 숨을 거둬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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