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신은진.권혁재] 자, 기웃거리지만 말고 어서 들어오세요. 여기는 '별난 물건 박물관'입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조그맣게 꾸몄지만, 세계 곳곳에서 모은 300여 종의 기발한 물품들이 가득하지요. 누워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귀차니스트 안경', 혼자서 등에 파스를 붙이는 도구, 사용 후에 "손 씻는 거 잊지 마!" 라고 말하는 변기….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물품들을 마음껏 만지고 사용해 볼 수 있는 '이색 체험 박물관'을 표방하고 있답니다. 주말이면 하루 평균 300~5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인기가 높지요.
처음엔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박물관을 차리게 될 줄이야.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업체 직원들, 그야말로 박물관에는 문외한들이었거든요. 시작은 '깜짝 선물 이벤트'였습니다. 언제부턴가 해외출장을 가는 사람은 동료들을 위한 선물로 '기발한 물건'을 하나씩 사오게 되었지요. 손가락만 한 TV, 적외선 센서가 달린 파리 잡는 기계 등 창조적이지만 실용적이지 않아 외면받는 발명품들을 주로 찾아냈습니다. "이번엔 또 뭘까"하며 기다리는 재미, "정말 기발한 물건을 구해왔다"고 자랑하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그렇게 모인 별난 물건들을 보고 한 동료가 "아예 박물관을 내볼까"하고 가볍게 제안을 했습니다. 그냥 웃어 넘기기에는 아까운 아이디어 같았습니다. 이 이벤트를 열고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업무에서도 독특한 발상을 많이 하게 됐다는 걸 다들 느끼던 차였거든요. '우리끼리의 재미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과 나눠보면 어떨까'. 좌충우돌 '별난 물건 박물관 만들기'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글=신은진 기자 nadi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일단 저지르고 보자
'별난 물건 박물관(이하 별박)'을 만든 ㈜밸루션은 원래 교육 콘텐트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소규모 IT벤처. 공대 출신의 직원들에게 '전시'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분명 재미 있고 즐거운 박물관이 될 것"이란 데에는 모두 동의를 하면서도,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기는 망설여졌다. "우리 같은 문외한들이 과연 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 들었던 것. 동료들 사이에서 '똘똘이'로 꼽히는 최재욱 실장은 '박물관 프로젝트'를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멤버다. "온라인에서와 달리 오프라인에서 사업을 하려면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일단 자본이 많이 필요할 텐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을 때는 원래 사업에까지 지장이 갈 테고…. 한마디로 위험 부담이 너무 컸지요."
이때 적극적으로 나선 이는 사장인 김덕연씨. "박물관 말이야, 이렇게 하면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재미있겠지?" 라고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며 망설이는 직원들의 옆구리를 찔렀다. 벤처기업을 차리기 전, 한글과컴퓨터에서 인사팀장과 영업팀장으로 일했던 김덕연씨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재미'야말로 블루오션 사업 분야"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단다. 사장님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간 직원들이 "일단 저지르고 보자"고 뜻을 모으게 된 것은 2003년 5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박물관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
*** 모르는 게 힘
처음에는 기존 업무와 박물관 개관 준비를 70대 30으로 분담했다. 기존 업무에서 얻은 수익을 몽땅 박물관에 투자해야 할 판이었으니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개관이 구체화될수록 쉬는 시간도 쪼개 박물관 업무에 매달리게 됐다. "정말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단다.
가장 급한 일은 역시 전시물 확보. 일본.홍콩.미국 등지의 장난감과 생활용품점들을 직접 찾아가 체크하고, 발명품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며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박물관의 컨셉트를 명확히 세우는 일도 중요했다. 이름난 박물관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관람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인터넷과 서점에서 자료를 뒤져가며 구체적인 운영 방식을 고민했다. 박물관에 대해 처음 세운 기준은 "관람객들이 몸으로 느끼고 즐거워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박물관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손대지 마시오'란 표지판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직접 손으로 만지고 사용해 볼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으로 꾸미기로 했다. 박물관 자리로는 홍대앞 주택가에서 눈에 띈 하얀 양옥을 골랐다. 딱딱한 사무용 건물보다는 친구네 집에 놀러온 듯 편안한 분위기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단다. 1층은 박물관, 2층은 사무실로 쓰면 비용이 절감될 것이란 계산도 있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 등 아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 스스로 했다. 40여 평의 공간에 전시물을 배치하고 관람객 동선을 짜느라 머리를 맞대고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어요. 전문지식이 없다는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꿔보자고 생각한 거죠. 기존의 틀을 전혀 모른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을 해낼 수 있다는 얘기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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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1년여가 넘는 준비기간을 마무리하고 드디어 양옥 입구에 박물관 간판을 걸었다. 고생 끝에 모인 전시물은 100원짜리 중국산 '오줌싸개 인형'부터 미국의 유명 작가가 만든 350만원짜리 '움직이는 조각'까지 모두 150여 종. 제법 모양을 갖춘 실내를 돌아보며 설레는 마음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 '별박' 대박 나다
시범 운영을 한 1개월 동안은 하루 3~4명 정도 다녀가는 게 고작이었다. 특별히 홍보를 하지 않은데다,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어 눈길을 끌기 어려웠던 것. 김 사장은 "곧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직원들을 위로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괜히 박물관을 내자고 고집을 피웠나 싶어 답답했다"고 말한다. 2005년 1월 정식 개관을 한 뒤, 홍콩에 출장을 가 있던 그는 이창수 과장이 서울에서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대박입니다!"라는 단 한마디. 한 방송사 카메라에 우연히 박물관 모습이 잡히고부터 관람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마침 겨울방학 기간이라 가족 단위 손님들이 하루 최대 700명까지 몰렸다.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전 직원이 밖으로 나가 따뜻한 음료수를 서빙했다.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힘든 줄 모를 만큼 신이 났었다고.
일단 입소문을 타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3월에는 사무실로 쓰던 2층까지 전시 공간으로 확장했고, 9월에는 서초동에 200평 규모의 별관을 냈다. "지방에도 이런 박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관람객들의 요청으로 부산에도 분관을 만들었고, 오는 4월에는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파주 영어마을 내에 '영어로 운영되는 별박'도 낼 계획. 명실상부한 '대박'을 이뤄낸 소감을 묻자 이들은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린다.
"'재미'가 '일'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덕분이죠. 잘 안 되면 어쩌나, 늘 하던 일이나 하자고 생각했다면 오늘의 성공은 거둘 수 없었겠지요.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 별나고 독특한 아이디어의 힘을 확인했답니다."
별박 인터넷 홈페이지(www.funique.com)에서 서울.부산에 있는 박물관의 위치와 운영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 홍대 본관과 서초 별관은 25일부터 1개 관으로 통합 운영된다니 기억해 둘 것. 이를 위해 용산 전쟁기념관 내에 200평 규모의 전시장을 새로 꾸미는 중이다. 02-335-0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