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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일반 경매사는 ‘0.1초의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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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on (58.♡.48.83) 작성일 06-01-24 17:57 조회 8,911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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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달러 나왔습니다, 5만달러. 5만5000달러 있으세요? 네, 5만5000달러 나왔습니다. 6만달러 있으세요? 없으세요? 네, 낙찰됩니다. 5만5000달러에 낙찰됐습니다.”
경매에 나온 작품이 언제 낙찰될 것인지는 경매사(auctioneer)가 결정한다. 경매사가 망치를 두드리는 순간이 바로 해당 작품이 팔려나가는 순간. 그래서 낙찰가격을 영어로 ‘해머 프라이스’(hammer price)라고 한다. 대개는 가격을 얼마씩 올려부를 것인지 단위가 정해져 있지만 이 역시 경매사가 현장에서 조정할 수 있다. 그러니 경매현장의 꽃은 당연히 경매사다.
경매사는 어떤 사람일까? 한마디로 순발력, 재치, 지식, 매너를 겸비한 만능 전문직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경매사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눈치가 빨라야 한다. 응찰자들의 얼굴을 보고 짧은 시간 내로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이 더 올라갈 수 있는데 너무 빨리 끝내도 안되지만, 더 이상 가격을 올릴 사람이 없는데 질질 오래 끌어서도 안된다. 경매의 분위기가 식을 뿐더러 응찰자의 기분도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매를 진행할 때 분위기를 읽는 현장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정해진 시간 내에 모든 작품의 경매를 끝내야 하기에 진행속도도 잘 맞춰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날 세일의 하이라이트인 최고 작품은 전반부의 약간 뒤쪽에 나온다. 경매시작 직후에는 어수선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진행이 된 뒤에 하이라이트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경매사는 보통 맨앞 부분에 나오는 작품은 빨리빨리 낙찰을 시킨 뒤 정작 하이라이트에 가서 시간을 충분히 가진다. 하지만 그러다가 속도가 늘어져 끝에 가서 시간이 모자라 허둥대면 그것도 큰 일이다. 특히 세계 양대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경매가 있는 날에는 보통 오전 10~12시, 오후 2~4시 하는 식으로 하루종일 쉬지 않고 경매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는 게 아주 중요하다.
경매사가 모든 작품에 대해 꼭 전문가일 필요는 없지만 대체로는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비록 경매현장에서 작품에 대해 아주 간단한 정보만 얘기하지만, 그래도 그 작품을 잘 알아야 자신있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담당부서의 장(長)이 경매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경매사의 단상에는 ‘경매사 노트’(auctioneer’s book)라는 게 놓여 있다. 이 노트에는 각 출품작과 그 작품을 내놓은 위탁자에 대한 간단한 정보 및 그 작품의 내정가(reserved price)와 서면응찰자(absentee bidder)들이 제시한 상한가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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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복잡해 보이지만 어려운 항목은 아니다. 먼저 ‘내정가’는 위탁자와 경매회사가 합의한 ‘최저가격’이다. ‘이보다 싸게 파느니 차라리 안 팔겠다’는 뜻이다. 그 가격 이하로는 팔 수 없기에 그 가격을 넘겨서 호가하는 사람이 없을 때는 저절로 유찰이 된다. 그래서 경매사는 내정가 아래에서는 거짓으로 가격을 불러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내정가가 6만달러인데 5만달러에서 더이상 호가하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아무나 찍어서 대충 가리키며 “5만5000달러 나왔습니다. 6만달러 있습니까?”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6만달러가 나오지 않으면? 물론 유찰이다.

경매사 노트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게 서면응찰자들이 제시한 상한가다. 직접 현장에 나오지 못하는 응찰자들이 “얼마까지는 낼 의향이 있다”고 약속하고 미리 부재자 등록을 한 것이다. 경매사는 그 응찰자를 대신해서 호가를 한다.

경매사가 내정가 아래에서 가격을 허위로 올릴 수 있고 현장에 없는 서면응찰자를 대신해서 가격을 부르기 때문에 이를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경매사가 속임수를 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뉴욕에 가서 처음 경매를 본다면 경매사들이 “5만달러 나왔습니다. 제가 다시 5만5000달러 하겠습니다!(Back to me!)”라고 말할 때 어리둥절할 것이다. ‘아니, 저 사람이 무슨 돈이 있어서 저렇게 계속 응찰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에서 경매사가 말하는 ‘나(me)’는 서면 응찰자를 뜻한다.


이런 관행이 익숙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오해를 막기 위해 서면응찰을 담당하는 사람이 경매사 옆에 따로 서 있다. 예를 들어 경매사가 “5000만원 나왔습니다. 더 하시겠습니까?” 하면 보조자가 옆에서 “서면 5500만원!”하고 외친다. 뉴욕에서는 경매사가 이 작업을 혼자 다 하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은 헷갈리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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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현장에는 서면응찰자뿐 아니라 전화응찰도 많다. 경매사 직원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금 얼마까지 나왔는지 듣고 얼마를 더 올리겠다고 얘기하면 수화기를 든 직원이 대신 호가해준다. 따라서 경매사는 경매를 진행하는 동안 눈이 뱅글뱅글 수도 없이 돌아가야 한다. 현장에 온 응찰자들은 물론, 양 옆에서 울려대는 전화 응찰자, 자신의 노트에 적혀있는 서면응찰자까지 실수없이 챙겨야 하니 말이다.

보통 경매는 두 시간 정도 진행되기 때문에 경매사는 이 시간을 지겹지 않도록 만드는, 마치 쇼 진행자 같은 엔터테이너의 자질도 갖추는 게 좋다. 망치를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 “아,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네요. 더 하시겠다는 뜻인가요?”라고 말해 청중을 웃기기도 한다.

하지만 경매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을 꼽으라면 역시 ‘신뢰’다. 아무리 재미있게 진행을 하고 눈치가 빨라도 단 한순간이라도 실수를 할 경우 고객에게 큰돈을 손해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경매사가 될 수 있을까? 무슨 자격증 시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매회사에서 작품 판매를 담당하는 스페셜리스트로 경험을 쌓아 실력을 인정받으면 경매회사는 그 사람을 경매사로 훈련시킨다. 물론 여자도 뛰어난 경매사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경매사는 서울옥션의 미술품경매팀 총괄팀장인 박혜경씨다. 요즘 박혜경씨에게는 “어떻게 하면 경매사가 될 수 있나요?”라는 이메일이 자주 온다고 한다. 미술시장과 경매시장이 성장할수록 경매사는 점점 인기를 끄는 직업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 이규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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