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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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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바람 (61.♡.35.226) 작성일 06-02-04 12:18 조회 5,932회 댓글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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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에게 있어 종(種)의 기원이 같다면, 진화해온 과정이 비록
다를지라도 한살이의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도 태어나서 알과 애벌레와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 우화(羽化)로서 생
(生)을 마감한다고 봐야 한다.
고등생물인 인간은 극히 진화된 정신을 갖고 있고, 번데기에서 성충
이 나오듯 언젠가는 육체라는 허물을 힘들게 벗어내고 마침내 갇혀있
던 정신이 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마지막 완성을 이루는 것인지 모른
다.


인간의 삶은 그러한 우화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내면의 고통이다.
살아가면서 지식의 확장을 위해 애쓰고 육체를 단련하는 것은 어느날
그러한 우화를 이루기 위한 처절한 몸짓이다.
그것은 어느날 드높은 비상(飛翔)을 기다리는,지워낼 수 없는 원초적
인 바람에서 비롯된 서툰 날개짓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느날부터 인간은 자신의 우화를 믿지 않게 되었
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신은 점점 퇴화를 시작했다. 문화는 병들고 문
명이 기형적으로 발달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수천년전부터
인간이 허물을 벗기 위해 몸부림치던 아픈 몸짓은 이제 하릴없이 사라
지고 번데기 안에서 안락을 추구하고 그 속에서 안락사를 거듭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인간은 수천년의 유사(有史) 가운데 다시 동면의 계절
로 되돌아와서 갑피를 뒤집어쓰고 마른 나뭇잎에 매달린다.
칭칭 감겨진 고추처럼 바람에 뒬룽이며 진화를 멈춘 혹한의 시대를 살
아가고 있다.

인간의 문명도 인간의 비극도 모두 인간만의 축제이며 인간만의 고통
이다.
인간이 이루고, 인간이 감탄하고, 인간이 만족하는 문명이라는 것은
자연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육체 위에 생
겨나는 부질없는 피부 트러블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자연은 인간의 문명을 허물고 자구적인 복구에 나설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엔트로피만을 증가시켜 왔을 뿐, 모든 것이 환원의 원리에
의해 생성 소멸된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살아 왔다.
인간이 먼저 자연을 유린하고 결국은 그 자연으로부터 처절한 복수를
당하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복수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코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인
간에게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자연의 자생적인 기능인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의 세계란 자기 완성을 위해 일시적으로 주어진
학습장이다.
인간은 물질세계에서 공작(工作)은 할 수 있으되 창조(創造)를 할 수
없다. 인간이 말하는 발명과 발견이라는 위대한 업적이란 결국 이미
이뤄진(그것이 진화건 창조이건) 위대한 업적에 대한 유치한 모방이거
나 탐색일 뿐이다.
인간이 한살이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업적이란 다만 자기완성일 뿐이
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아무에게나 주어진 몫이 아니다. 그것은 필생을
통하여 우화를 위한 끊임없는 고통의 삶을 겪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인간이 지금껏 추구한 것은 물질의 풍요와 육체의 안락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로 인하여 캄캄한 번데기 속에서 안주하며 우화의 꿈
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차츰 직관력을 잃어갔다.
시력을 잃은 생물에게 더듬이가 발달하는 것처럼 직관을 잃은 인간에
게 필연적으로 논리가 발달되어 갔다.
논리란 경험한 사실을 일반화하는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연역적이건
귀납적이건 그것은 무언가에 의존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시공간을 건
너뛰지 못한다. 번데기 속에 어차피 공간 같은 것은 없었다. 논리란
자기동일성의 유지를 요구한다. 일견 자기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논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정지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차단이 된 한시적 화면이다.

그 정지(停止)란, 현상을 포착하는 인위적인 인식의 기반 위에서만이
잠시 가능하다. 사물에 대한 고정된 인식은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만
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대상은 이 세상에 아무런 것
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을 인식하고 관념하는 주체(主體) 또
한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고 있다. 달리는 차량 속에 앉아 다른 속도
로 달리는 차량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에 대해 성립한 논리를 우리는
터무니 없이 믿고 있다.
속도는 가변적이며, 차량의기능도 가변적이며, 차량 속에 있는 대상
도 주체도 가변적이며, 도로 역시 가변적이며, 바람의 속도마저 가변
적이며, 그 차량을 운행하는 운전자도 가변적이다. 파고들면 그것뿐이
겠는가.
그러고 보면 결국 논리란 잠시동안 이루어지는 공통된 특징을 모션캪
쳐한 것이다.

이 세상에 결정되어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의 아집은 정형화와 규격화를 바란다. 문명은 디지털화
되어간다. 인간에게 분석은 치밀하고 논리는 확장되어 가는데 총화와
직관의 능력은 사라져 간다.
인간은 유기성을 버리고 기계적 사고(思考)에 억류되어 간다. 그래서
표준을 제시한다.그 표준은 결국 가변의 인간이 만든 가변의 표준일
뿐이다. 표준은 어차피 정립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분쟁의
씨앗이 된다. 수많은 논리의 홍수 속에서 인간은 각박해 지고 비생산
적인 논쟁에 휩쓸린다. 번데기 속에 갇힌 자기중심의 사고, 퇴화한 시
력으로 더듬어가는 직접적인 촉각에 의존한다. 닫힌 세계 속에 몸을
넣고 협착된 관념의 세계에서 십인십색의 꿈을 십인 일색으로 윤색한
다. 거기에 처음부터 획일화 될 수 없는 갈등이 내재되어 있었다.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자는 곧 세상의 힘으로 인간을 바꾸려
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바꾸는 것이 본령이 아니라 인
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버려두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인간을 바꾸
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곳곳에서 아우성이 들린다. 거기엔 필경 식자
연하는 자들이 앞장을 서고 있다. 그리고 멋모르고 휩쓸리며 고함을
지르는 우울한 무리들이 있다. 지식을 건강하게 소화시키지 못하고 지
식의 똥배가 튀어나온 자들이 가득찬 세상,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기
우화를 꿈꾸지 못하고 타자에게 지식의 비만을 자랑하며 똥배를 들이
미는 세상, 그들은 그렇게 살다가 결국은 번데기로 묻혀가고 말 것이
다.



모를 일이다.
나 또한 파도를 걱정하는 어리석은 뱃사공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이미 그러하였거늘 나룻터에 앉아 왜 물결 이는 것을 염려하
고 있는 것일까. 쓸데없는 인연의 그물일 것이다. 거기엔 내가 한때나
마 사랑했던 세간의 인연들이 함께 출렁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서글
픈 집착에 한사코 매달려 부득부득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다.
내가 이토록 벅찬 그리움을 각혈처럼 토해내지 않더라도 세상이 그들
을 돌려 보낼 것이므로.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눈부시도록 화창한 봄날이 왔는데도, 나는 아
직 우화(羽化)를 이루지 못한 채 인연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우리에게 두번의 겨울나기가 허락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
서도 말이다.



댓글목록

왕별님의 댓글

profile_image 왕별 아이피 (58.♡.1.39) 작성일

인생은 우화와 같습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뱃사공으로서 존재할 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항상 우리는 새로움이 필요하고 그리고 동행자가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의 시간과 공간안에 우리는 존재하고 존재하는 사람들의 시대정신이 필요합니다. 같이 갈 사람들의 정신이 새로운 것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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